스님들, 어째서 벌거벗은 여인 허락했을까

도편수의 사랑을 배신한 여인...강화도 전등사 나부상

임춘신 | 기사입력 2015/02/12 [23:45]

스님들, 어째서 벌거벗은 여인 허락했을까

도편수의 사랑을 배신한 여인...강화도 전등사 나부상

임춘신 | 입력 : 2015/02/12 [23:45]

 

새해 첫날 지인이 책 한 권을 나에게 선물했다. 20년간 작업한 그녀의 사진이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며 상기된 얼굴이었다. 자신이 존경하는 스님의 책에 사진을 실어 더없이 기쁘단다. 많은 사진 중에서 고르고 편집하는 과정이 정말 힘들었다며 입이 퉁퉁 부어있었다.

 

그녀의 열정과 행복이 전해져 와 글은 잠시 뒤로 하고 사진부터 감상했다. 그러던 중 사진 한 장에 눈이 멎었다. 쪼그리고 앉아 대웅전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나무 조각상이다. “어디서 보았을까?” 그 사진에 그리움이 밀려든다. 언젠가 보았었는데 어디일까? 어디서 찍은 사진인지 책에 적혀있지 않아 안타까웠다.

 

2주쯤 지났을까 덮어두었던 사진의 기억이 문득 났다. 강화도 전등사다. 내가 고1 남자 아이들 첫 담임을 맡아 헉헉대었던 그해 가을 소풍 장소였다. 아이들이 돌아가며 사진을 함께 찍자고 했던 곳이었다. 남고에서 유일한 여자 선생님이었고 대학을 갓 졸업한 새내기였으니 아이들에게 제법 인기가 있었다.

 

소풍 며칠 후 한 학생이 사진 한 장을 나에게 디밀었다.

 

“대웅전 처마에 이런 조각상이 있던데 이게 뭘 뜻하는 건가요?”

“어머, 이런 나무 조각이 있었구나. 난 몰랐네. 관찰력이 참 좋구나. 우리 한 번 찾아보자.” 까지는 말한 것 같은데 그 후 알아보았는지 기억이 없다. 그냥 흐지부지 넘겼으면 그 학생이 참 많이 실망했겠다 싶어 미안한 마음이 울컥 솟는다. 30여년이 지난 지금에야…….

 

‘이제라도 알아보자. 그 때의 미안함도 되새기고. 한 해를 시작하는 1월에 단군신화의 근원지 강화도 전등사로 가보자. 겨울 바다도 보고.’

 

가물가물 기억 되찾으러 강화도 전등사로

 

▲     © 뉴스앤뷰(주)



일요일이어서인지 가족 나들이가 많고 초등학교 학생들이 단체로 와 아이들의 경쾌한 소리가 경내를 울린다.

 

“이곳 마니산 전등사는 1600년을 이어온 우리나라의 대표적 고찰이에요. 여러분, 팔만대장경 들어 보았지요? 고려시대 부처님의 힘으로 몽고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16년 동안 팔만대장경을 판각한 곳이에요.”

 

선생님의 이야기를 제법 귀 기울여 듣고 있는 기특한 아이들이다. 그 아이들 곁에서 함께 듣고 있으니 나도 학생이 된 듯 기분이 새롭다. 1866년 프랑스가 병인양요를 일으켰을 때 이곳 스님들이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서책들을 토굴로 옮겨 지켜내었다고 한다.

 

내가 참 뜻 깊은 자리에 서 있구나 싶었다. 사진 한 장에 이끌려 왔는데 긴 세월 속에 참 많은 일들이 이곳을 거쳐 갔고 묵묵히 지켜낸 역사의 현장에 서있는 느낌이었다.

 

‘아, 그 사진 속의 나무조각상!’ 아이들과 함께하다 잊을 뻔 했다. 대웅보전 지붕을 올려다보니 그 아래 네 모퉁이에 발가벗은 채 쪼그리고 앉아 지붕을 받치고 있는 여인이 있다. 그 표정이 힘겨워 보인다.

 

왜 이 대웅보전을 지은 사람은 저 조각상을 만들어 저 곳에 두었고 스님들은 그것을 허락했을까 참으로 궁금해졌다.

 

잘못을 되풀이 하는 우리들 모습이 아닐까

 

이곳 전등사에 비치된 자료에 의하면 대웅보전을 지은 도편수가 불사를 하던 중 주모와 깊은 사랑에 빠졌다. 불사를 마치면 혼인할 생각으로 그동안 모은 돈을 모두 주모에게 맡겼다. 그런데 어느 날 여인은 자취를 감추어 버렸고, 사라진 여인 생각에 몇 날을 힘겨워 한 도편수는 마음을 다잡고 공사를 마무리했는데... 그 처마 네 모퉁이에는 벌거벗은 여인상이 만들어져 있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고 한다.

 

욕심에 눈이 멀어 사랑을 배신한 여인이 부처님의 말씀을 들으며 잘못을 참회하고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라는 도편수의 사랑과 염원이 반영된 것이란다.

 

다시 올려다보니 왠지 안쓰럽다. 저 조각을 하며 가슴을 쓸어내렸을 도편수의 마음이, 배신한 주모의 모습이, 잘못을 되풀이 하는 우리들의 삶이 아닐까 싶어 마음이 짠해져 온다.

 

바람이 쌩쌩 불긴 하지만 산 능선을 따라 축조 된 성으로 올라가 보았다. 성의 길이가 2300m정도라니 대단하다. 성에서 바라다 본 전등사는 요새다. 이곳에서 민초, 의병, 승병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으며 나라를 지켜내려 애썼을까.  바라보고 있으니 시간여행을 떠난 듯 우리의 역사가 떠오르고 지금 세상에 태어난 게 감사하게 생각된다.

 

해안을 한 바퀴 돌며 겨울 바다를 본다. 날은 지난해와 별다를 것이 없겠지만 난 1월이 좋다. 계획이 있고, 꿈이 있고, 희망이 있어서다. 날 기다려주는 열두 달이 있어 행복하다.

 

굵은 눈이 해안을 뒤덮는다. 잠시 집으로 돌아갈 걱정은 접어두고 두 팔을 벌려 빙글빙글 돌며 아이처럼 맞아본다. 까르르 소리 내어 웃으며 한 해를 축복한다. 사진 덕에 이곳에 와 지나간 20대 에너지를 충전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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