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의 마지막, 잊지 못할 소호거리

[서울 아지매의 뉴욕 여행기⑦]‘럭셔리’와 빈곤이 공존하는

임춘신 | 기사입력 2013/02/18 [08:43]

뉴욕에서의 마지막, 잊지 못할 소호거리

[서울 아지매의 뉴욕 여행기⑦]‘럭셔리’와 빈곤이 공존하는

임춘신 | 입력 : 2013/02/18 [08:43]

 

▲ 뉴욕 스테이크하우스, 아들과 며느리     © 임춘신


한국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 소호 거리를 다시 가보고 싶었다. 그곳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신의 꿈을 키워 나가고 있는 아들 일터가 있는 곳이다. 그리고  꿈틀꿈틀 대는 생명력을 거리 곳곳에서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었다.

소호는 내가 머무는 브루클린에서 지하철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다. 지하철에 오르자마자 빈자리가 눈에 띄어 얼른 앉았다. 맞은 편 좌석에 어마어마하게 뚱뚱한 흑인 아가씨가 앉아 있다. 좌석 세 개를 혼자 차지한 그녀를 보는 내가 호흡이 가빠지려 한다. 허벅지 하나가 옆자리에 앉은 아가씨 몸보다 더 굵어 보인다. 참 예쁜 얼굴인데. 슬퍼 보이는 그녀의 까만 눈이 뉴욕의 또 다른 부분을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10 여 년 전 까지만 해도 가난한 흑인들이 사는 곳엔 야채 가게가 없었다고 한다. 그들은 감자튀김이나 과자, 콜라로 끼니를 해결했다고 들었다. 그런 인스턴트식품을 먹은 후유증이 저런 엄청난 비만을 초래한 것은 아닐까.

추운 날씨에 거리에 서서 대형피자 한 판을 순식간에 먹어치우는 흑인을 보고 내 가슴을 쓸어 내렸었다. 상상초월 럭셔리 사이에 비추이는 또 다른 면이 슬픔으로 다가왔다.

퀸즈에 있는 한인마트에 갔을 때다. 택시를 잡았는데, 마침 한국인 기사였다.  브루클린으로 가자고  했더니 대뜸 한다는 소리가 “왜 그런 곳에 사느냐” 는 것이었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아저씨! 그런 곳이라뇨?”
“아, 거긴 깜둥이들만 사는 곳이에요. 아주 못사는 동네에요. 한국 사람이 왜 그런 곳에 살아요?”

이 아저씨, 정말 어이가 없었다. 웃고 넘기려고 했지만 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입바른 소리를 한마디 하고 말았다. ‘아저씨가 아는 일부분을 마치 전체인 양 싸잡아 말하는 것은 곤란하죠. 백인도 많이 살고 있고 교양 있는 흑인들이 많아요. 집값이 얼마나 비싼지 아세요?’라고. 

 뉴욕에 산지 20년이 되었다면서 그동안 도대체 뭘 보고 산 것인지! 참으로 딱한 사람이었다.’ 흑인을 무조건 비하하는 저 위험한 생각이 LA사태를 몰고 온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들게 했다. 

 

▲ 소호거리에 있는 P매장 모습     © 임춘신


소호 거리는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키가 190cm는 되어 보이는 깡마른 청년이 걸어오고 있다. 발목까지 오는 착 달라붙은 긴 검정 드레스코트를 입었다. 빨간색 이어링과 어울려 참 멋져 보인다. 오늘 따라 저런 모습을 보는 것이 즐겁고 가슴 설레기 까지 하다. 게이들의 입맞춤도 낯설지 않다. 그냥 행복한 커플로 보이고 행복한 모습을 보는 것이 즐겁다. 내일 떠난다는 아쉬움 때문일까. 

 핸드백으로 유명한 P 매장이 보였다. 명품도 구경하고 운 좋으면 혹시 명품 가방 하나 건질 수 있는 기회도 있지 않을까 해서 들어가 보았다. ‘어머나’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검은 정장 차림의 점원들이 주르륵 인사를 해 무척 민망했다.

그 민망함 보다 나를 더 놀라게 한 건, 매장 중앙에 있는 커다란 언덕이었다.  ‘저게 뭐지?’ ‘이 비싼 땅에 저 공간을 왜 텅 비워 두었을까?’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핸드백과 구두는 중앙과 한쪽 벽에 소량 전시되어 있었다. 이러한 디스플레이로 매출을 올리기보다는 브랜드 홍보용이 아닌가 싶었다.

이 매장으로 무명의 한 건축가가 세계적 스타가 되었다고 한다. 독특한 아이디어와 그의 열정이 뉴요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일까.

매장 한쪽에는 유리 엘리베이터가 있다. 호기심에 탔는데 거의 움직임이 없을 정도로 아주 천천히 내려간다. 이 희한한 매장 설계에 마음을 뺏겨 그곳에 놓여 있는 핸드백과 구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 소호거리에 있는 P매장 모습     © 임춘신


무심코 바라본 건물에서 스토리와 건축가의 혼을 느꼈다고 얘기하던 아들 말이 생각 나 눈앞에 보이는 건물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내가 보고 있던 건물이 햇빛에 반사 돼 황금색이 된다. 빛에 따라 변화하는 건물 모습이 아름답게 보이니 괜스레 가슴이 두근거린다. 저 건물을 설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2년 전 아들의 대학원 졸업 전시회 때다. 건축설계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 없었던 나는 아들 작품을 보고 인증 샷 ‘찰칵’ 하고 나니 그 다음엔 할 일이 없었다. 다른 작품도 구경하려 했지만 뭐가 뭔지 몰라 아들 작품 앞에서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때 미국친구 부모님이 와서 아들 작품을 꼼꼼히 보고는 여러 가지 질문을 아들에게 했다. 그리고는 최고라며  격려하고 갔다. 행복해 하는 아들을 보며 정말 많이 부끄러웠었다.

‘저 부모는 건축하는 분인가 봐.’ 미안한 마음에 내가 말을 툭 던졌다. “아니요, 이곳 부모님들은 자식들이 하는 일을 공부해요. 지난 번 미국 친구 집에 일주일 머물렀는데 정말 부러웠어요. 그 친구 아버지는 아들 덕분에 건축에 대해서 공부하게 되어 행복하다고 하셨어요. 부모와 대화를 오랫동안 재미있게 한다는 것이 신선하게 느껴졌어요.”하는 아들의 대답에 남편과 난 말문이 막혔었다.

열심히 하라고만 했지 아들이 하는 공부를 우리가 공부해보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그러다보니 ‘밥 먹었니? 밥 잘 챙겨 먹어라.’ 두 마디 하고나면 그 다음엔 할 말이 없었다.

요즈음 우리는 건축에 관한 책을 조금씩 읽으며 아들 며느리와 좀 더 즐거운 대화를 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 외벽철제 계단이 있는 건물     ©임춘신


이 생각 저 생각을 떠 올리며 걷다보니 건물 외벽에 철제 사다리를 건물 꼭대기까지 설치해놓은 곳이 여럿 보였다.

‘우리나라에선 가스관을 타고 도둑이 침입하는데 어쩜 저리도 쉽게 올라가게 해놓았을꼬?’ 궁금했다. 후에 알고 보니 오래 된 건물에는 비상 출구가 없어 외벽에라도 설치하지 않으면 소방법에 의해 주거 허가가 나지 않는단다.  남의 나라 도둑 걱정까지 하는 내 오지랖에 웃음이 났다. 

떠나기 전, 오리지널 뉴욕 음식점에서 가족 만찬을 하기로 했다. 가족 만찬 장소로 낙점된 곳은 1885년에 문을 열고 지금까지 성업 중인 뉴욕의 킨즈 스테이크하우스였다. 벽과 천장을 파이프와 오래된 사진들로 장식해 놓아 한껏 분위기를 돋우었다. 120년 동안 이 음식점을 찾은 유명 인사들의 이름이 파이프 하나하나에 붙어 있다.

아이들은 존경하는 건축가 이름이 있다고 무척 좋아한다. 이 분위기에서 식사하는 것이 점말 즐거운가 보다. 스테이크가 특별히 맛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통 뉴욕 분위기 하나만은 확실히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종업원과 대부분의 손님이 백인이다. 120년 전통을 지닌 음식점이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것을 보면 오래 된 것을 소중히 여기는 오리지널 뉴요커들이 많은가 보다.

10년 전 처음 뉴욕을 찾았을 때다. 다른 건 못해도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은 보아야 된다며 찾은 곳이 ‘43st'이었다. 운 좋게 앞자리에서 보았는데 그때 뒤에 있던 한 배우에 푹 빠졌었다. 다른 출연 배우들 보다 나이가 많았던 그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대사 한마디 없는 그였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춤추던 그 열정적인 모습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한 컷으로 남았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43st'은 공연중아다. 이것이 뉴욕을 다시 찾게 만드는 매력이 아닐까.

▲ '유니언스퀘어'에 있는 빌딩     ©임춘신


전체는 최첨단을 걷는데 개인은 자신 만의 모습을 간직하는 곳, 무뚝뚝하고 거칠고 남의 일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지만 어려움에 처한 사람은 도와주고, 초호화 럭셔리와 빈곤이 함께 어울려 굴러가고 있는 도시. 엄청난 사람에 발 떼기가 어렵다가도 모퉁이만 돌면 아무도 없어 깜짝 놀라는 곳, 세계 모든 민족이 와글와글 모여 살며 열정을 뿜어대는 곳.

이 모든 뉴욕의 매력을 담고 이제 한국으로 돌아간다. 오지랖도 넓고 남의 일에 관심도 많은 이웃들이지만 그 정이 그립다. 지루하게 느껴지는 일상들이 정겹게 느껴지고 그리워지는 것을 보니 돌아갈 시간이 되었나보다.

서울의  깨끗하고 럭셔리한 지하철과 화장실이 그립다. 내가 하고 싶은 말 술술 할 수 있고 나와 비슷한 사람이 살고 있는 곳,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답해주는 나라, 배달과 애프터서비스의 천국, 몇 백 년이 아닌 반만년 역사와 전통을 지닌 저력 있는 나라, 나의 세계 제1도시는 누가 뭐래도 내가 살고 있는 우리나라 서울이다.

공항은 늘 설렘이 있다. 이곳 JFK 공항도 마찬가지다. 어느 곳에 위치하든 그곳엔 이별과 만남이 있다. 손자를 품에 꼭 안아 본다. 한동안 뉴욕이 그리워 ‘몸앓이’를 할 것 같다

♥ 지금까지 서울 아지매의 뉴욕 여행기 7편을 읽으며 함께 여행해주신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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