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 미쳐야 된다고 생각했다"

[인터뷰]수원시민신문 '김삼석' 발행인

이민선 기자 | 기사입력 2006/11/11 [12:49]

"신문에 미쳐야 된다고 생각했다"

[인터뷰]수원시민신문 '김삼석' 발행인

이민선 기자 | 입력 : 2006/11/11 [12:49]
15년 전 지방분권이 이루어진 뒤 지방정부와 지방의회가 출현했다. 바야흐로 지방자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지방자치의 목적은 지역 실정에 따라 지역 특성을 살려서 지역 주민들에게 맞춤형 행정을 펼치는데 있다.

지방자치 시대에 올바른 지역정치를 뿌리내리게 하기 위한 조건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지역 언론이다. 언론의 역할은 사회가 복잡하고 다변화됨에 따라서 그 폭이 넓어졌다. 언론의 가장 큰 역할인 사회적 감시기능을 수행함은 물론이거니와 비판과 조절 기능까지 더불어 수행해야 한다.

지역언론은 시민들의 알권리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시정, 도정을 감시하고 비판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우리의 지역언론은 취약하기만 하다. 구조적으로 수익을 낼 수 없는 열악한 상황 속에서 힘겨운 홀로서기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언론에 뜻이 있고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손 치더라도 쉽사리 손을 댈 수가 없다.

현재 우리의 지방자치는 지역 토호들의 지방자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군다나 5·31 지방선거가 보수 야당의 압승으로 끝나버린 지금, 토호들의 권력을 견제하고 비판할만한 마땅한 세력조차 존재하지 않는 형편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지역언론의 역할은 더욱 증대되기만 한다. 언론은 그야말로 '총대를 메는' 심정으로 분투해야 할 입장이다.

이러한 시기에 풀뿌리 지역언론에 대한 사명감만을 가지고 시민들의 알권리를 위해서 맨주먹으로 뛰고 있는 지역신문의 창간인을 만나게 된 것은 나로서는 큰 행운이었다.

'남매 간첩단'으로 4년간 억울하게 옥살이 한, 김삼석씨

▲ 김삼석 수원시민신문 발행인
ⓒ 이민선
수원시민신문'을 발간한 김삼석(43)씨를 처음 만난 것은 경기도 안양의 모 시민단체가 주최하는 술자리 모임에서다. 그는 '무슨 맘을 먹고 힘든 일을 추진하게 되었느냐'는 나의 질문에 "미쳐야 된다고 생각했다"는 대답으로 운을 떼었다.

어떤 일엔가 몰두해서 온 힘을 쏟는다는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다. "미쳐야 된다고 생각했다"는 말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난 그 자리에서 인터뷰 요청을 했다. 지역언론의 실상을 제대로 알고 싶었고 이 사람을 미치도록 열정적이게 만든 것이 무엇이었나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김삼석씨가 과거 국가보안법상 간첩죄를 뒤집어쓰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고 그 과정에서 고문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지난 1993년 9월, 안기부 프락치로 활동하던 백흥용의 조작에 의해 '남매 간첩단' 으로 몰렸고 억울하게 4년간이나 옥살이를 한 적이 있다. 그 당시 김삼석씨는 '반핵평화운동연합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 후 1999년 2월에 복권되었으며, 2003년~2004년까지 '의문사 진상 규명 위원회'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다. 인터뷰는 22일 '수원시민신문' 본사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다.

- 당신을 미치도록 열정적으로 만든 언론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가장 경제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적은 인원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보자는 것이다. 어떤 사안이나 정책에 대한 홍보가 필요할 때, 시민단체 10곳이 할 수 있는 일을 신문사 1곳이 할 수 있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다. 기자는 감시자의 위치에서 사실관계를 따지는 대단히 비판적인 시각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시민단체의 초병 역할을 할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시장의 선거법위반의혹 등에 대한 제보가 있다고 치자. 이에 대한 집중적인 기획취재는 기자만이 가능하다. 기자가 취재를 하고 지역시민단체가 이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면 된다. 지역에서 이런 기자들을 길러내야 하는 것도 풀뿌리 지역 언론사의 역할이기 때문에 언론사를 택한 것이다."

"수원시민신문은 시민들이 돈 모아서 만든 '시민주 신문'"

▲ 창간 준비호
ⓒ 이민선
- 사업적으로 성공하기 극히 어렵다는 지역 언론에 뛰어들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다면 말해 달라.
"2003~2004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일하기 전에도 지역언론을 준비한 적이 있다. 다시 말하면 꿈꾸던 것을 현실화시키기 위해서 지역 언론에 뛰어든 것이다. 그러면서 생각한 것이 미쳐야 한다는 것이다.

수원시민신문은 시민들이 한푼 두푼 돈을 모아서 신문을 만드는 '시민주 신문'이다.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지옥'과 '천당'을 왔다 갔다 했다. 그게 1년 5개월째다."

- 언론인이 되기 전에는 무슨 일을 했나?
"언론인이란 표현은 아직 낯설다. 88년부터 군사문제에 관심을 가진 뒤 92년경 군입대 지침서인 '청년과 군대'라는 책을 일본에서 출판했다. 그 후 줄곧 북미관계나 군 인권문제 등 군사평론에 몰두해왔고, 2005년에는 1년간 인터넷 '통일뉴스'에 '김삼석의 군바로잡기'를 연재했다.

또 2002년에는 수원의 한 신문사에 근무한 적이 있다. 그 뒤 2003~2004년까지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조사관으로 일했다. 조사관으로 일할 때,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보수신문에서 나의 전력을 색깔론을 들먹이며 계속 물고 늘어진 적이 있다."

- 수원시민신문 창간 준비기간은 어느 정도였나?
"본격적으로 2005년 2월 13일부터 창간실무준비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미칠(?)정도로 진행해 5월 초 인터넷뉴스(urisuwon.com)을 열었다. 그리고 5월 20일에 창간준비 1호를 발간한 뒤 12차례 준비호를 냈고, 올해 2월 13일 창간했다."

- 창간호를 발간하면서 가졌던 소회가 있다면?
"'종이는 같지만 기사는 다르다'는 말이 있다. 우린 기존의 신문과는 다른 목소리를 냈다고 생각한다. 9개월 동안 수원시민신문은 열두 번의 창간준비호를 냈다. 다 합치면 한 일간지의 하루치 밖에 안 되지만 그래도 사안 사안마다 지역의 여론을 환기시켜냈다고 자부한다."

- 수원시민신문을 비롯한 풀뿌리 언론이 추구해야할 지향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는 데 안타깝게도 지역은 여전히 보수적이다. 풀뿌리 지역언론이 추구해야할 지향점은 '사회적 감시기능 강화'라는 측면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오랫동안 감시할 수 있는 진정한 '사람', 즉 지역일꾼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역일꾼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면서 지역에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거다. 그러나 신문사나 매체를 통해서 가능할지는 여전히 실험 중이다."

"신문에 미치다 죽으면 양지바른 데 묻어 주겠다"

- 감동이 파도처럼 밀려왔던 순간이 있었다면 얘기해 달라.
"첫 번째 창간설명회 때 제일 먼저 신문사를 찾아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돈을 펼치더니만 5만원을 창간기금으로 전해 준 여성이 있다. 이 사람은 지하 단칸방에서 살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었다. 눈물이 앞을 가려 어떻게 마음을 표현해야 될지 몰랐다. 그저 두 손을 꼭 잡았다. '신문에 미치다가 죽으면 양지바른 데 묻어 주겠다.' 창간위원이 되어 달라고 설득하기 위해 한 음악원에 들렀을 때 원장님이 하신 말씀이다. 이 말을 듣고 속으로 한참 웃었다. 이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 지금까지의 성과에 만족하는가?
"성과는 별로 없다. 여전히 햇병아리다. 다만 감동만 있을 뿐이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 수원시민신문을 발전시킬 구체적 방안이 있다면 말해 달라.
"작년에 창간기금마련 도자기 전시회도 하고, 후원주점, 책 원고 작업도 했다. 창간기금을 모으려고 안 해 본 게 없다.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구체적인 방안은 없다. 닥치는 대로 다하는 거다. 결국 초심을 잃지 않는 게 제일 구체적인 방안일 거다."

- 열악한 상황에서 신문사를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스트레스가 많이 쌓일 텐데 그래도 근래의 당신 삶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가?
"황무지에서 신문사를 만든 건데 어찌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겠는가. 지난번에는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해 며칠간 물리치료를 받았는데 잠시 쉴 수 있어서 그때가 잠시나마 행복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그의 치열한 삶이 떠올라서 마음이 무거웠다. 우리의 근대사가 조명될 때마다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간첩', '프락치', '억울함' 등 이 모든 언어를 한 몸에 안고 있는 사람을 만난 것은 나로서도 색다른 경험이다.

또 그의 열정에는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치열함을 넘어서 처절하기까지 하다. "미쳐야 된다"는 그의 말을 어느 정도는 이해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렇지만 가슴 한쪽이 허전해 지는 것을 숨길 수 없었다. 지역에서 언론이 꽃피기까지의 험난한 과정이 눈앞에 보였기 때문이다. 나 또한 지역 언론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형편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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